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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트레일, 두 시선
A Tale of Two Journey

 


스카르파 선수와 마케터

새벽 4시 반, 어두운 호텔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한 사람은 수많은 100K 레이스를 경험한 스카르파의 애슬릿 구교정 선수,

또 한 사람은 그 브랜드의 마케터로, 9년 만에 복귀전을 치르는 트레일러닝 러너다.

 

2026년 1월 24일 아침 7시, 홍콩 팍탐청(Pak Tam Chung)에서 시작된 100km 레이스.

두 사람은 같은 신발 SCARPA Spin Ultra 2를 신고 같은 출발선에 섰지만, 그날의 여정은 전혀 다른 리듬과 이야기로 흘러간다.

13시간 만에 결승선을 통과한 구교정 선수, 그리고 27시간 동안 달리고 걷고 멈춰서며 완주한 마케터.

이 매거진은 하나의 대회, 같은 신발 아래 펼쳐진 두 개의 100K 이야기를 담았다.





스카르파 마케터 POV

 

 

 

 

스카르파 마케터, 나름 트레일 러닝을 오래했다고 생각한다.

10년이 넘게 이 씬에서 뛰고 일도 해봤고, 홍콩 100은 2017년 그녀가 처음 도전한 100km 레이스였다.

그리고 9년 만에, 스카르파 마케터라는 정체성을 달고 다시 돌아왔다.

 

핑계라면 잦은 야근과 주말엔 ‘커뮤니티 활동’을 해야해서 운동을 건너뛰곤 했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벼락치기 운동을 시작했지만,

늘 그렇듯 출발선에 선 순간은 “아, 이번에도 준비가 부족하군”이라는 깨달음으로 가득했다.




 

 

 

홍콩 100은 ‘Sand to Summit’이라는 슬로건처럼 모래사장부터 시작해 홍콩 최고봉인 대모산까지 뛰어넘는 코스다.

아침 7시반, 바다와 섬을 잇는 다리 위에서 장엄한 일출과 함께 레이스가 시작됐다.


모래사장은 나름 발끝으로 뛰어보려 애썼고, 산도 나름 잘 올랐다.

CP마다 콜라, 물, 후르츠 칵테일 몇 에너지젤로 몸을 채우며 30km까지는 무난하게 달렸다.




 

 

 

마케터가 선택한 신발은 스카르파의 스핀 울트라 2. 사실 이 신발의 진가는 40km부터 빛을 발했다.

내리막길에서 기대 이상으로 접지력과 쿠셔닝이 좋았고, 덕분에 한층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문제는 CP5, 즉 드랍백 지점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한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은데?”

 

드랍백이 있는 CP5에 도착하니 몸도 마음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살짝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옷과 양말을 갈아입고 장비를 교체하려고 앉았는데…

 

"이쯤에서 그만둘까?"

마음속에서 조그만 속삭임이 점점 크게 울렸다. 지금 그만두면, 교정 선수와 함께 밥도 먹고 쉬기도 하면서,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지을 수도 있을 텐데.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그 유혹은 점점 강렬해졌다.




 

 

 

그런 마케터의 몸과 멘탈을 억지로 끌어올린 건, 소중한 연차와 옆에서 지극정성으로 케어해주는 커플의 눈꼴 시린 애정 행각이었다.

괜히 열 받아서 “내가 너넨 이길거야” 하면서 한 시간 푹 쉬고는 다시 신발을 신고 어둠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진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CP6을 지나면서 홍콩의 상징 같은 트레일, 맥리호스 트레일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처음 만난 건 기억에 없던 수직 상승의 계단길.
“이게 뭐지?” “이건 없었는데?” 당황과 함께 시작된 험난한 오르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이게 진짜 시작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 트레일은 홍콩 정부가 1970년대에 만든 최초의 장거리 트레일. 이름은 당시 총독이었던 머레이 맥리호스 경의 이름을 따왔다.
약100km 동안 4,000m가 넘는 상승 고도를 자랑하며,
바다, 섬, 도시, 능선, 숲, 계단, 원숭이까지 다 경험하게 해주는, 전천후 종합세트 같은 곳이다.

밤이 깊어지고 CP6을 지나자 진짜 졸음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도심의 불빛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헤드랜턴이 마치 최면을 거는 듯 졸음을 유혹했다.
CP7에서는 "10분만 자야지" 하고 눈을 붙였는데, 깜빡 한 시간이나 자버렸다. 눈이 번쩍 떠져 허겁지겁 출발했지만 CP7-8 구간도 만만치 않았다.

원숭이도 잠든 정적의 트레일. CP8까지 이어지는 길은 너무나 지루하고 너무나 졸렸다.
새벽 4시,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간신히 CP8 도착. 짧게 15분 눈을 붙이고, 마침 우연히 만난 한국 러너들과 잠깐 대화하며 정신을 붙들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니들힐.
욕이 절로 나왔다. 니들힐은 532m를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난코스.
헤드랜턴 불빛이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비추면 비출수록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친 다리로 한 발, 또 한 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그리고 CP9. 또다시 쏟아지는 졸음에 15분 잠을 청하고는 마지막 산, 대모산으로 향했다.






안개 자욱한 새벽의 대모산. 빛도 없고 사람도 없는 그 길에서 오직 내 발 아래의 바위만이 보였다.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정상, 그리고 하산길 4.4km의 아스팔트 내리막이 펼쳐졌다.
그 순간 내 다리엔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스카르파 스핀 울트라 2와 진통제.
진통제의 약발을 믿고, 마지막 에너지젤을 빨아먹고, 아스팔트 내리막을 뛰기 시작했다.
등산객들이 건네는 “Go Go!” “Almost there!” 응원이 큰 힘이 됐다.
그리고, 골인.






27시간 45분. 100km. 거의 9년 만의 복귀전이었다. 처음 뛰었을때보단 몇시간 느려졌지만 완주했다.
들어오고 교정 선수가 반겨주었고, 마케터는 맥주 한 잔을 들고 쓰러지듯 앉았다.
피니셔 후디, 에너지젤 30개, 한 트럭 분량의 콜라,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장비들
스핀 울트라 2와 블랙다이아몬드 디스턴스 Z폴의 경량성과 강성, 스카르파 스포츠 테이프의 끈질긴 버팀, 마지막까지 버텨준 내 두 다리.






그래도 어째저째 완주 했다. 여기까지 데려다 준 이 고마운 발. 그리고 나도.
지금은 단지, 또 9년 후의 내가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기를.






마케터의 착용 장비 리스트 (내돈내산 장비)
신발: SCARPA Spin Ultra 2 → 뛰어난 접지력과 중장거리 내구성으로 홍콩100 전 구간에 적합
폴(등산 스틱): Black Diamond Distance Z Pole → 가볍고 단단한 폴로 오르막·내리막 모두에서 큰 도움
상의: Arc'teryx Norvan Jacket → 낮과 밤의 기온차에 대응
하의: Black Diamond Session 5IN shorts → 러닝시에 적합한 경량성과 활동성
모자: SCARPA Trail Cap, Arc'teryx Norvan Cap → 햇빛, 땀, 그리고 바람까지 막아주는 필수품





SCARPA Trail Running Athlete – 구교정 선수 POV

 




2025년 10월, 스카르파 브랜드 담당자와 선수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홍콩100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접수가 마감된 대회였지만, 진영님의 인맥 덕분에 선수 초청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초청 메일이 도착했고, 짧은 시간 안에 종목을 선택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100km를 클릭했고, 참가비 37만 원. 꽤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비행기라도 저렴하게 끊어보려다 결국 출발 일주일 전, 40만 원에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모든 게 급하게 결정된 홍콩100. 대회 당일까지도 ‘괜히 신청했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도 이왕 가는 홍콩, 최대한 보고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란타우에서 시작된 홍콩
1월 22일 목요일 새벽 2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새벽 5시 45분 홍콩에 도착했다. 대회 이틀 전, 첫날은 란타우 섬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실버마인 비치로 가는 버스에서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었고, 이때 홍콩의 높은 물가가 체감됐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짐을 맡기고 란타우 피크로 향했다. 버스로 고도를 올린 후 가볍게 걷고 뛰며 몸을 풀었고,
이후 옹핑 마을을 지나 실버마인 비치로 돌아왔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개를 산책시키는 현지인들만 보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대회 전날의 고요
1월 23일 금요일. 아침 조깅은 생략하고 해변을 천천히 걸었고 편의점에서 산 아메리카노는 의외로 맛있었다. 해변 앞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여유를 즐겼다.
체크아웃 후 페리로 홍콩섬에 도착, 한국인 지인과 만나 국수를 먹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비싼 디저트(두쫀쿠)와 커피를 마시고
밤늦게 도착한 진영님과 합류해 저녁을 먹고, 대회 준비를 마친 뒤 다음 날 새벽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레이스의 시작
1월 24일 토요일 오전 5시 20분, 버스를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오전 7시, 100km 레이스가 시작됐다.
준비가 늦어 엘리트 라인에는 서지 못했고, 출발 아치를 밟은 건 출발 후 약 30초쯤 지나서였다. 이미 수백 명의 선수가 앞에 있었다.






컨디션에 대한 확신이 없어 초반부터 경쟁적으로 달리지는 않았다. 100km 레이스에서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첫 CP까지는 도로를 따라 10km를 달리는 구간인데 풍경이 뛰어나다. 일출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레이스 중이지만 뛰면서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선수들도 꽤 있었다.

편한 호흡으로 CP1에 도착했다. 화장실은 줄이 길어 휴지만 챙겨 다시 출발했고,
작은 산을 넘은 뒤 해변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었다.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산을 넘을 때마다 짧게 등장하는 모래사장 구간은 답답했지만, 모두 같은 조건이었다. CP3(32km)를 지나며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됐다.
오르막에서 한 명씩 추월하며 배번호를 확인했다. 내 배번은 88번. 주변에는 아직 500~600번대 선수들이 많았다.
100km 종목에만 약 2,000명이 참가한 대회라 CP3까지는 병목이 심했고, 추월이 쉽지 않았다. 바로 앞 선수를 넘어서도 또 다른 줄이 이어졌다.

CP1 248위 → CP2 234위 → CP3 164위 → CP4 136위
 드랍백이 있는 CP5(49km, +2250m)에는 111위로 도착했다.


후반으로 들어가는 몸
드랍백에서는 에너지젤만 빠르게 챙기고 10분도 안 돼 다시 출발했다.
뛰면서 지퍼팩 안의 에너지젤을 정리해 골반 주머니에 분산시켰다. 흔들림이 줄어들자 다시 달릴 만해졌다.






CP6까지는 거리도 길고 상승고도도 높아 꽤 힘들었다. 추월하는 선수들의 배번도 100~200번대로 바뀌었다.
이제 내 위치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CP에서 콜라 500ml를 마시고 오렌지를 많이 먹었다. 이 시점에서는 그게 가장 잘 들어왔다.
CP6 90위, CP7 85위.
CP5 이후로는 서포터와 응원 인파가 크게 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응원이었다. 힘든 순간에 큰 힘이 됐다.



마지막 산들




마지막 두 구간에는 가장 가파른 업힐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구간이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여기서 격차를 줄이고 몇몇 선수를 추월할 수 있어 좋았다.
CP8 84위, CP9 80위.
CP9로 내려오는 다운힐에서 결국 헤드랜턴을 켰다. 내심 헤드랜턴 없이 완주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내 기량이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홍콩100은 세계적인 트레일로 손꼽히는 맥리호스 트레일을 따라 이어진다.
댐 사이드 도로에서 맞이한 일출,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내려다보이는 홍콩의 풍경은 모두 인상적이었다.
업힐은 급경사지만, 다운힐은 최대한 완만하게 설계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능선과 정상에도 아스팔트 구간이 많았다.

피니시
목표 시간은 12시간 30분이었지만, 초반의 불확실한 컨디션과 병목으로 인해 기록은 13시간 8분.
그래도 만족스러운 피니시였다. 외딴 곳에서 긴 레이스를 마친 뒤 맞이한 환영은 무엇보다 좋았다.






홍콩 여행을 함께한 여자친구가 피니시 라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CP7부터 피니시까지 약 30km를 뛰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저녁 8시 8분 피니시 후, 숙소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다리는 아프고 속이 좋지 않았다.
한 번 토하고 나니 몸이 한결 편해졌다. 편의점에서 사 온 신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체크아웃 후, 진영님을 마중 나갔다. 조금 늦었지만 피니시에서 만날 수 있었고,
지옥 같았던 27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 한 잔으로 한참을 쉬었다.






홍콩100의 코스와 운영은 지금까지 뛰어본 대회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다. 분명 탑3에 들어가는 대회였다.
다만 비싼 물가, 비용 대비 아쉬운 숙소 컨디션, 자본주의적인 참가비를 생각하면 다시 올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 하루는 중국 심천에서 보냈다. 재밌었던 4박 6일의 홍콩 여행이었다.






선수의 착용 장비 리스트
신발: 스카르파 스핀 울트라 2 - 장거리 레이스에 가장 적합한 신발. 단단하면서도 적절한 쿠션에서 오는 안정감이 뛰어나다.
폴: 블랙다이아몬드 디스턴스 Z 폴 (120cm)
상의: 스카르파 민소매 유니폼
하의: 블랙다이아몬드 - 디스턴스 러 벨트
모자: 블랙다이아몬드 바이저



홍콩100(Hong Kong 100) 소개


 

홍콩100은 아시아에서 가장 상징적인 트레일러닝 대회 중 하나로, 매년 수천 명의 러너들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입니다.

대회는 홍콩 뉴테리토리의 동쪽 팍탐청(Pak Tam Chung)에서 시작해, 해안길과 해변, 고대 마을,

산악지대를 지나 홍콩 최고봉 타이모산(Tai Mo Shan, 957m)까지 이어지는 총 100km 코스로 진행됩니다.

누적 상승고도는 5,000m 이상이며, 특히 후반부에 고난이도의 언덕이 집중되어 있어 체력 분배가 중요한 경기입니다.

 

2026년 대회 기준으로는 100K 외에도 30K, 50K, 그리고 30+50+100K를 모두 완주하는 그랜드 샴(Grand Siam)까지

다양한 종목이 마련되어 있어 러너들의 수준과 목표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홍콩의 자연미와 도시 풍경을 동시에 경험하며,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트레일 챌린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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